커크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방금 자기가 들은 말이 뭐였는지, 기억을 다시 조립하는 중이었다. 스팍이 중요한 문제라면서 커크에게 업무 후 면담을 신청하더니 한 말이 이거였다. 스팍의 눈빛은 놀라울 정도로 진지했다.
"그러니까... 푸딩... 비유법인가?"
"아뇨. 단어 그대로입니다. 제가 요크타운에서 구매한 수제 우유푸딩이 사라졌습니다. 저의 의심은 합리적입니다. 따라서 대원을 대상으로 내사를 요청합니다."
커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틈으로 '아...'하는 탄식이 길게 뻗어져 나왔다. 확실히, 함선으로 복귀할 때 스팍의 손에 앙증맞은 상자가 들려져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게 푸딩이었구나.
"스팍은 푸딩을 참 좋아하는구나."
커크는 스팍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표현을 고르고 골랐다. 어쩐지 다섯살 배기 꼬마 앞에 선 듯한 말투를 하고선,
"안타깝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내사를 진행할 순 없어. 이건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스팍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해하기 싫다는 의미였다. 예상을 어긋난 반응에 커크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스팍을 상대로 이런 소리를 하고 있을 줄이야.
"물론! 사적으로 다른 대원한테 협조를 요청할 수는 있어. 난 바쁘고 함장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위치가... 그래서 곤란하지만, 아마 널 도와줄 다른 대원이 있을 거야. 응! 그래, 우후라는 어떨까? 둘이 친하고 또..."
스팍은 점잖게 뒷짐을 지고서, 커크가 거의 마임 수준으로 손짓발짓을 더해가며 횡설수설하는 장면을 관람했다. 실컷 떠들다가 얼떨결에 대안을 찾아낸 커크가 냉큼 스팍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물론 스팍의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우후라한테 부탁해봐!"
커크가 경쾌하게 웃으며 스팍의 어깨를 두들겼다. 스스로의 재치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스팍의 고민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푸딩?"
우후라가 눈썹을 찡그렸다. 스팍의 태도는 전보다 무기력했다. 그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제가 요크타운에서 구매한 수제 우유푸딩이 사라졌습니다. 의심이 가는 대원이 있다면..."
"글쎄, 체콥이 아닐까? 걘 아직 어리니까 단 걸 좋아할 거야."
"니요타..."
우후라가 팔짱을 끼고서 어깨를 으쓱 올렸다. 이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연령에 따른 편견과 짐작은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스팍은 와중에 우후라의 말을 요목조목 지적했다. 우후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은하 외곽 지역 언어로 적힌 문서를 번역하는 작업을 마무리해야 할 참이었다. 푸딩은 아무래도 좋았다. 만약 그 푸딩이 말을 할 줄 알아서 업무를 도와준다면 다시 생각해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협조 감사합니다."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음에도, 스팍은 예의상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가장 유의미한 도움을 준 이는 술루였다. 스팍이 외는 푸딩 염불을 가만히 경청하더니, 처음으로 질문다운 질문을 던졌다.
"그걸 마지막으로 본 곳이 어딘데요?"
흥미를 얻은 스팍의 눈이 빛났다. 그는 술루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힘을 주어 답했다.
"함교에 휴대한 후 제가 업무를 보는 테이블에 올려두었습니다."
"음... 고양이 우리에 생선을 갖다 놨네요."
스팍이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를 못하셨군요. 제가 찾는 건 푸딩이지 생선이 아닙니다."
"......"
술루는 당황스러움을 흔들리는 눈동자로 표현했다. 그러나 스팍에게 지구식 표현을 이해시키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푸딩 문제에 더 관심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요크타운'이라는 단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무하는 동안에 함교에 있었던 사람들을 조사해봐요. 그러고 보니 닥터도 함교에 잠시 들르지 않았나요?"
스팍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감사인사를 건넸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뭘요. 참, 스팍."
자리를 뜨려던 스팍이 멈추고 술루를 보았다. 술루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꼭 그 푸딩이 먹고 싶은 거라면, 벤을 통해서 구해줄 수 있어요. 시간은 좀 많이 걸리겠지만."
"호의는 감사하지만, 전 지금 당장 그 푸딩이 필요합니다."
스팍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의 제안을 사양했다.
스팍이 함선 생활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은 말하지 말 것. 지금 체콥 앞에서 우후라가 당신을 지목하더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체콥은 패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스팍이 하는 말에 대충 대답했다. 그는 한창 항해에 필요한 수식을 계산하던 중이었다.
"미스터 체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그제야 스팍은 체콥이 자기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기꺼이 처음부터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푸딩, 요크타운, 함교. 이번엔 진지한 자세로 경청한 체콥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 상자가 푸딩이었구나..."
"그것을 보셨습니까?"
"네. 닥터가 들고 다니던데요."
체콥은 멍때리느라 아무 말도 못하는 스팍의 눈치를 슬슬 살피다, 조심스럽게 이제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스팍은 순순히 체콥을 보내 주었다. 체콥은 다시 패드에 얼굴을 묻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부함장님, 안 들어가세요?"
메디 베이 앞에 서있는 스팍을 본 채플이 물었다. 스팍은 놀랐지만 짐짓 아닌 척했다. 채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스팍은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한 쪽에는 어딘가를 다치고 돌아와서 앓는 소리를 내는 대원들이 있었고, 그 사이를 맥코이가 갈팡질팡 뛰어다녔다. 맥코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누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채플이 트라이코더를 들어 스팍의 몸을 훑었다.
"이상은 없는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채플은 검사 결과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스팍 쪽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맥코이를 보느라 넋이 나가 있었다. 채플이 스팍의 눈 앞에 손을 갖다대고는 '딱'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부딪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스팍이 채플을 돌아보았다. 채플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확인할 것이 있어서..."
스팍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메디 베이 내에서 맥코이가 근무하는 연구실이었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문에 달린 창 너머에 연구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자리 주인을 닮아 온갖 사무용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 위로 익숙한 상자가 보였다. 이미 한 차례 풀어헤쳐진 상자 옆에 푸딩용기가 있었다. 먹다가 중간에 뛰쳐나온 건지, 자그마한 숟가락이 꽂혀져 있었다.
"치프한테 용건 있으시면, 부함장님 왔다고 전해드릴까요?"
채플이 다가와서 물었다. 제 푸딩의 최후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던 스팍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들른 건 비밀로 해주십시오."
오늘도 커크가 함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커크는 대원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건네고 함장석에 앉았다. 문득 미리 자리에 앉아 탐사를 위한 자료를 정리하는 스팍이 눈에 들어왔다.
"스팍, 물건은 찾았어?"
'푸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애둘러 말하는 커크의 표정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스팍은 커크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면서도 온화한 말투로 답했다.
"네. 제 주인을 무사히 찾아 돌아갔습니다.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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