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생도 중 하나, 사기꾼, 안하무인, 언제나 제멋대로인 천둥벌거숭이.

 

그것이 그에 대한 인상의 변화였다.

 

스팍이 커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아카데미에서였다. 커크는 아카데미의 유명 인사였다. 소문에 어두운 스팍이었지만, 조지 커크의 신화적인 업적은 물론이거니와 그 아들의 입학 사실까지 모를 순 없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커크가 누구와 어울리든지, 어떤 생도 생활을 하든지 하등 스팍과는 관련 없는 사항이었다. 그는 스팍의 강의를 듣는 생도도 아니었다. 스팍은 불필요한 정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조교 스팍에게 생도 제임스 커크의 존재는 '불필요한 정보'였다.

 

그 다음에 그와 맞닥뜨린 건 코바야시 마루 테스트에서였다. 이번이 3수인 주제에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커크는, 절대 통과 불가능한 그 시험을 통과해냈다. 보통은 그럴 경우 '대단하다'하겠지만, 그럴 사안이 아니었다. 출제자인 스팍이 모든 변수를 계산해내어 0%의 가능성을 도출해낸 시험이었으므로. 무언가 조작이 가해졌다고 밖엔 생각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엔터프라이즈에 입성할 때까지 스팍에게 커크는 그저 최악의 생도였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에 승선한 후부턴 최악의 '대원'으로 그 위치가 변하였다. 그는 대원이 되어서도 규칙 따위를 우습게 여겼다. 그런 그에게 함장 자리를 넘겨준 건 단순히 스팍 본인이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커크가 함장으로 있는 엔터프라이즈에 부함장을 자처한 데엔 나름의 논리적 이유가 있었다.

 

1. 엔터프라이즈는 현존하는 탐사선 중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 그런 엔터프라이즈를 커크가 있다는 이유로 마다한다면 도리어 스팍의 손해다.

3. 커크의 인성과는 별개로, 그의 함장으로서의 능력은 인정할 만하다.

 

그렇게 함께 항해를 하면서 스팍은 커크에 대해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커크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이 사실을 안 건 탐사를 시작한지 오래 지나지 않은 후였다. 어느 날은 맥코이 박사가 커크를 찾았다.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보이질 않으니, 커크를 발견하면 본인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스팍은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복도를 지나다가 우연히 커크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그는 혼자 휴게실에 앉아서 기타를 안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저번 탐사에서 얻어온 인형을 앉혀두고선,

 

들어봐, 내가 요번에 발견한 고전 음악이야.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

Oh, I believe in yesterday

 

곧장 맥코이에게 통신하려고 커뮤니케이터를 들었던 스팍은,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스르르 손을 내려버렸다. 그리고 홀린 듯이 가만히 그의 노래를 감상했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정말 예뻤다.

 

"부함장님! 여기서 뭐하십니까?"

 

아무 것도 안하고 벽에 기대 서있는 스팍을 지나다가 본 체콥이 쾌활하게 말을 걸었다. 스팍이 놀라 허둥거렸다. 그와 동시에 노랫소리가 멎었다.

 

 

 

 

 

 

 

 

스팍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발치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커크였다. 어느새 깨어난 커크가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패드를 붙잡고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불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하얀 이불이 둥글게 굽은 그의 등을 감쌌다. 스팍이 몸을 뒤척이자 침대 시트가 부스럭거렸다. 그 소리에 커크가 돌아보았다.

 

"깼어? 미안."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커크는 뒷말을 흐렸다. 스팍은 커크가 왜 사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금방 끝나. 갑자기 생각났는데 함장 일지 기록하는 걸 깜빡했더라고."

 

그리곤 다시 일지를 기록하는 데에 집중했다. 스팍은 그 사이에 몸을 일으켜 커크의 뒤로 다가왔다. 그의 등을 감추고 있는 이불을 슬쩍 잡아 내렸다. 그의 뒷목에 남은 흔적은 몇 시간 전 이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해주었다. 스팍은 천천히 그 위로 입술을 포개었다. 커크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대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커크가 물었다.

 

"뭐하는 거야?"

"불쾌하셨다면 그만 두겠습니다."

 

스팍의 우려와는 달리, 커크는 스팍이 이불에 손을 댈 때부터 웃고 있었다.

 

"아니, 계속 해줘. 기분 좋아."

 

스팍은 덤덤하게 이불을 끝까지 당겨 내렸다. 커크는 이제 완전히 나신을 드러냈다. 스팍은 도드라진 커크의 날개 뼈에 입 맞추면서, 한 손으론 그의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쓸었다. 일지 기록을 종료하는 커크의 목소리에 가벼운 신음이 섞였다. 커크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스팍의 손길을 맘껏 만끽했다. 그의 손에 힘이 풀리며 패드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스팍이 커크의 어깨에 턱을 기대며 뺨을 부볐다. 마치 커다란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커크가 고개를 돌려 입맞춤을 선사해주었다. 가벼운 입맞춤이 몇 번 이어졌다. 어느새 둘은 마주 보고 앉은 자세가 되었다. 커크가 적극적으로 스팍의 머리를 끌어당기며 키스했다.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며 끈적한 소리를 남겼다. 목마른 한 마리 고양이처럼, 커크는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스팍의 입술을 혀로 할짝거렸다. 스팍의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왔다.

 

"으악!"

 

스팍이 짓누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커크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엎어졌다.

 

"세상에, 스팍!"

 

침대에 거꾸로 누운 커크가 제 몸 위에 자리 잡는 스팍을 보곤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이럴 기운이 남았어? 우리 아까 한바탕 했잖아!"

", 상기시켜드리자면 전 벌칸입니다."

"오 맞아. 그랬지. 깜빡 잊었는데 기억나게 해줘서 고마워."

 

스팍이 커크의 반응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반박하려는 찰나에, 커크가 스팍의 뒷목을 잡고 끌어당겨 다시 키스했다. 스팍의 벌어진 입술을 물다가, 그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어리둥절해 하던 것도 잠시, 스팍도 이내 커크의 입술에 취해 그의 머리칼을 쥐고 마음대로 헝클어뜨렸다. 뜨겁게 달아오른 두 혀가 얽혔다가 잠시 떨어졌다. 커크는 벅찬 숨을 몰아쉬면서 방금 전까지 스팍이 다녀간 제 입술을 핥아냈다. 붉어진 입술과 두 볼이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우리 흥 깨지 말자. ?"

 

커크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을 신호로 스팍은 다시 커크에게로 달려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 아까 잠든 사이에 당신 꿈을 꿨습니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선 저에게 머리를 기대고 누운 커크를 품에 소중히 끌어안은 스팍이 불현듯 말문을 열었다.

 

"공짜로? 나 비싼 몸이야. 출연료 내놔."

 

그렇게 말하면서 커크는 기운 없이 스팍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스팍이 그것을 잡아채고는 제 입술로 꾹 눌렀다. 커크가 킥킥 웃었다. 스팍은 웃지 않았지만, 애정이 한껏 담긴 눈으로 커크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꿈으로 인해서 짐에게 처음 반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언제였는데?"

 

스팍은 한참 말이 없어졌다. 커크는 예쁜 그 눈을 깜빡이면서, 대답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스팍이 그 위로 살포시 입 맞추었다. 그리곤 볼에, 입술에까지 입맞춤이 이어져 내려왔다.

 

"이상하게도……. 짐을 보니 머릿속에 아무 것도 떠오르질 않는군요. 나중에 기억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뭐야……."

 

입에 발린 소리라기엔 스팍의 눈빛은 진지했다. 싱거워. 삐죽거리던 커크는 이내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달렸으니 피곤할 수밖에. 스팍은 잠든 커크가 유리마냥 깨질세라, 제 품에 소중히 가둬놓고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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